나라 이름을 바꾸는 일은 드물지만, 역사적으로 여러 나라가 다양한 이유로 국명을 변경해 왔습니다. 예를 들어, 버마는 1989년에 미얀마로 국명을 바꾸며 새로운 시대를 열었고, 상호 간의 정치적, 문화적 정체성을 재정립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또 다른 예로는, 스와질란드가 2018년에 에스와티니로 국명을 변경한 사례가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새로운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제 사회에서의 이미지를 재정비하려는 의도로 이루어집니다.
터키에서 튀르키예로의 변화
최근에는 터키가 국명을 변경했습니다. 2022년 6월, 유엔은 기존 ‘터키(Turkey)’라는 국명을 ‘튀르키예(Türkiye)’로 변경하는 것을 승인했습니다. 이 변경의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이미지와 부정적 연상 탈피
첫째, 국명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서입니다.
영어 단어 ‘터키(turkey)’는 칠면조를 뜻하며, 국민 대다수가 이슬람교를 믿는 튀르키예에서는 기존 국명 터키가 추수감사절 식사와 기독교 문화를 연상시킨다는 부정적 여론이 있었습니다. 또한 ‘터키(turkey)’는 미국 속어로 어리석은 사람을 지칭하기도 하여, 터키라는 국명의 어원으로 용감한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 ‘튀르크’와는 배치되는 부정적 이미지를 담고 있습니다.
정치적 배경과 민족주의
둘째, 정치적 배경도 있습니다.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2003년 이후 19년간 총리 등을 거쳐 지도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급격한 인플레이션과 자국 통화가치 하락 등으로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정권교체 여론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주요 외신들은 내년 6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집권당 정의개발당(AKP)이 민족주의 성향 유권자들의 표를 확보하기 위해 국명 변경을 추진한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슬람주의와 민족주의를 강조하며 적극적인 주권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2020년 7월 유네스코 유산인 아야 소피아 박물관을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로 전환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입니다. 과거 튀르키예 공화국을 설립한 아타튀르크 전 대통령이 서구화를 추구한 것과는 대조적인 행보입니다.
새로운 국가브랜드 창출
마지막으로 중요한 이유는 새로운 국가브랜드 창출입니다.
국가브랜드는 한 국가의 정치, 문화, 경제 등 다양한 요소로 형성된 상징체계로, 글로벌 시장에서 차별적 경쟁우위를 점하는 데 중요한 요소입니다. 강력한 국가브랜드는 국가의 대외적 위상을 높이고 외국과의 교류를 원활하게 합니다. 또한, 경제적 차원에서 우수한 국가브랜드는 자국 제품의 경쟁력을 높이고 기업 및 제품의 브랜드 가치를 향상합니다. 많은 선진국이 국가브랜드에 관심을 갖고 중장기 전략을 추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튀르키예의 국가브랜드 전략
관광객 유치에서 국가브랜드 강화로
과거 튀르키예의 국가브랜드 전략은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집중되었습니다. “리듬에 맞춰 터키를 즐기세요(Go with the Rhythm, Enjoy Turkey)”와 같은 슬로건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2014년, 튀르키예 정부는 관광수출업자협회(TMI) 산하에 국가브랜드 강화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터키, 잠재력을 발견하라(Turkey, Discover the Potential)”라는 홍보 슬로건을 발표했습니다. 국영 방송사는 특정 시간대에 의무적으로 홍보 영상을 방영하며 자국민들의 공감대를 확보하고, 대외 홍보 캠페인도 병행했습니다.
홍보 영상에는 튀르키예가 추구하는 세 가지 국가브랜드 핵심 가치(역사, 기술, 기회)가 담겨 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오스만 제국, 실크로드의 일부로서 1만 년 이상 인류 문명의 터전이자 다양한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한 튀르키예의 역사적 장소들이 소개됩니다. 이어 자동차, 가전제품 등 제조업 현장의 모습이 나오며 기술력을 보유한 자국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으라는 메시지가 등장합니다.
경제 및 산업 분야의 노력
국가브랜드 강화를 위한 경제 및 산업 분야의 노력도 있었습니다. 2014년 정부는 국가 지원 브랜딩 프로그램 투르퀄리티(TURQUALITY)를 만들고 “10년 안에 글로벌 브랜드 10개를 만든다”는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브랜드 잠재력을 가진 자국 기업을 대상으로 단순한 금융 지원 외에 컨설팅 서비스 등을 제공하여 글로벌 시장에서 고품질의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려 했습니다. 초기에는 섬유 및 의류 산업에 국한됐으나 이후 각종 소비재, 보석류, 자동차, 산업기계 등 제조업 전반으로 확대되었습니다.
국가브랜드 순위와 긍정적 이미지
2021년 튀르키예는 국가브랜드 순위 32위를 기록했습니다. 최근 몇 년간 환율 변동성과 서방국과의 외교적 마찰로 인한 리스크 확대가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거시경제의 불확실성이 해소된다면 20위권 이내로 반등할 가능성은 높습니다. 중앙아시아 및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우호적 관계와 긍정적 국가이미지에 기인합니다.
튀르키예는 중앙아시아와 아프리카와의 오랜 교류와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을 통해 많은 투자를 이끌어냈습니다. 특히 아프리카 국가들과는 대외 원조와 인적 네트워크 형성을 통해 경쟁력 있는 국가브랜드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튀르키예의 국명 변경은 단순한 명칭 변경이 아니라, 국가의 이미지를 새롭게 하고, 국제 사회에서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전략적 결정입니다. 튀르키예가 글로벌 무대에서 더욱 경쟁력 있는 국가로 자리매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물론 한국 사람 입장에서는 발음하기가 더 힘들어지긴 했지만, 이번 국명 변경이 튀르키예의 미래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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