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이종석 국가정보원장 후보자가 국회 청문회에서 "간첩법은 반드시 빨리 개정돼야 한다"고 밝히면서, 형법 제98조, 일명 ‘간첩법’ 개정 논의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 법은 1953년 제정된 이후 단 한 번도 개정되지 않아 시대 변화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꾸준히 받아왔습니다. 특히 ‘적국’이라는 모호한 표현이 법 적용의 걸림돌이 되어, 정작 간첩을 간첩죄로 처벌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은 많은 이들의 의문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간첩법의 구조적 문제와 개정안의 주요 내용, 그리고 그 배경과 쟁점을 체계적으로 정리해보겠습니다.
현행 간첩법의 한계: '적국'만 처벌?
현재의 간첩법은 형법 제98조에 따라 ‘적국’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하거나 이를 방조한 자에 대해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형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적국’이라는 개념이 지나치게 제한적이라는 점입니다.
우리 법상 ‘적국’은 사실상 정전 상태인 북한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북한은 동시에 ‘국가’가 아닌 ‘반국가단체’로 정의되어 있어, 형법상의 간첩죄로는 처벌하기 어렵고, 대신 국가보안법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북한은 형법상 간첩죄로 적용하기 어렵고, 중국 등 다른 외국을 위한 간첩 행위 역시 ‘적국’이 아니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는 법적 공백이 존재합니다.
그 결과, 외국을 위한 스파이 행위는 군사기밀보호법이나 국가보안법 등의 다른 법률을 적용해야만 처벌이 가능하며, 이는 실제 처벌의 실효성을 크게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어왔습니다.
간첩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
이번 개정안은 이런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 처벌 대상을 확대: 기존 ‘적국’을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로 수정하여, 북한뿐 아니라 중국 등 외국을 위한 간첩 행위도 명확히 간첩죄로 처벌 가능하도록 함.
- 간첩 행위 정의 명확화: ‘외국의 지령·사주·의사연락 등을 받아 국가기밀을 탐지·수집·누설·전달·중개하는 행위’ 등을 법률에 구체적으로 명시.
- 형법으로 직접 처벌 가능: 기존에는 군사기밀보호법 등 보조적 법률로만 처벌했으나, 이제 형법상 간첩죄로 직접 적용이 가능해짐.
이러한 개정 방향은 미국, 독일, 일본 등 주요국의 간첩법이 ‘적국’이 아닌 ‘외국’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는 흐름이기도 합니다.
개정의 배경: 실화가 된 스파이
최근 들어 중국 국적자들이 군사기지 촬영, 현역 병사 포섭 등의 스파이 활동을 벌인 사건이 실제로 확인되면서, 법적 공백을 방치할 수 없다는 여론이 높아졌습니다. 형법상 간첩죄를 적용할 수 없으니, 결국 보조법률에 의존하거나 형량이 낮은 죄목으로 우회 처벌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이는 국민의 불안과 법적 대응력 저하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야 모두 간첩법 개정의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지만, 정작 법 개정은 정치적 변수에 발목을 잡혀 지연되어 왔습니다. 21대 국회에서는 여야 합의로 법사위 소위를 통과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 사태 이후 여야 간 책임 공방이 벌어지며 전체회의 상정이 무산되었고, 결국 법안은 자동 폐기되었습니다. 현재 22대 국회에서 개정안이 재발의된 상태입니다.
남은 쟁점: 범위·충돌·인권
법 개정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중요한 쟁점이 존재합니다.
- 국가기밀의 범위: 간첩 행위로 규정된 정보가 어디까지 포함되는지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면, 과잉처벌이나 자의적 해석의 우려가 있음.
- 기존 법률과의 체계 정비: 군사기밀보호법, 국가보안법 등과의 충돌 문제를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
- 외국인의 인권: 간첩법의 적용이 자칫 외국인을 과도하게 규제하거나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될 위험은 없는가.
법원행정처 등에서는 이 점들을 고려해 신중한 접근을 주문하고 있으며, 실제 개정안 심의 과정에서도 다양한 보완 요구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결론. 현실에 맞는 법, 공정한 국가
간첩법 개정의 핵심은 단순한 단어 교체가 아니라, 시대 변화와 현실을 반영한 법 체계의 정비입니다. 이제는 간첩 행위가 특정 ‘적국’만을 위한 행위로 한정되지 않으며, 글로벌 정보전과 사이버 안보 위협이 일상화된 시대에는 법 적용 대상과 범위를 보다 유연하고 현실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동시에, 간첩법은 국가 안보를 지키는 수단인 만큼, 자의적 오남용이나 인권 침해의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세심한 입법 설계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shorts/WBFSeAWZRz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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